일상의 오니멀

멍 때리기

오니멀 2024. 11. 21. 11:43
728x90
반응형
SMALL

1호기가 5살 때 그러니까 한 5년 전에 아이와 처음으로 단 둘이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제목은 겨울왕국2 뭐 이후의 이야기는 당연하지만 아이는 한 동안 영화의 BGM을 흥얼거리면서 스파이더맨 거미줄 쏘듯 다녔었고 (아마도 엘사의 아이스빔을 쏘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고 생각됨) 이후는 당연하게도 마트에 가면 겨울왕국에 관련된 제품을 사 달라고 했었다.

1호기가 제일 안 좋아하는 크리스토프를 겨우 얻어서 해 봄

크리스마스에는 아이가 스티커북을 사 달라고 졸라서 사 줬었는데 이게 5세 아이가 하기에는 꽤 난이도가 있는 제품이었나 보다 조금 해 보더니만 섬세한 작업이 불가하다고 판단이 되었는지 결국 한 구석에 쳐 박아 두고 안 하길래 아빠가 좀 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세상 서럽게 울며 안된다는 이야기만 오토리버스 하길래 결국 포기를 하게 되었다.

마음의 힐링 중

그럼 이후로 아이가 크면서 이 책을 다 완성했을까? 결국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당연스럽게 망각이 작용하게 되었고 아이는 이 책의 존재 그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최근 집이 너무 지저분하고 답답해 보이는 것 같아서 세월의 흔적이 있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자는 마음에 이것저것 버리다가 책장 가장 구석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려 5년 만에..

 

어차피 아이가 하지 않는 것 사실 궁금하기도 했고 재미있어 보이기도 해서 내가 열어서 식탁에서 해 보려 핀셋까지 세팅을 하고 진행을 하려는 순간 1호기가 어쌔신처럼 등 뒤에서 다가와 왜 자기 거 허락 없이 하냐고 화를 낸다. 

 

"아니 5년이나 안 했으면 그냥 버린거 아냐? 너도 사실 이거 있는 줄도 몰랐잖아!!"

 

라고 대꾸를 하니 자기가 아끼면서 하는 중이라고 그렇다고 한다. (사실 자기도 찔리는 부분이 있는지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고 남이 하는 게임이 세상 제일 재미있어 보이는 법이다. 결국 아이와 타협을 하여 아이가 제일 관심이 없어하는 크리스토프(?)를 한 장 얻어본다.

 

57번 어디에 간거니??

처음 해 보지만 정말 멍 때리면서 하기 좋은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연말이 되어서 그런가 생각이 많았었는데 잠깐 생각을 내려두고 잠시 달리던 것을 멈출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한참을 작업 중에 누나와 아빠 둘 다 조용하니 2호기가 슬금슬금 낮은 포복으로 기어 와서 관심을 보인다. 

 

결국 1호기와 2차전..

중재자의 역할로 겨우 제일 재미없어 보이는 것을 한 장 뜯어내어 동생에게 넘겨준다. 식탁에서 여유롭게 하고 싶었는데 2명이 추가되니 공간이 부족하다. 중간 중간 아이들이 어지른 것을 정리하는 것은 또 나의 몫이 된다. 멍 때리기 위해서 시작을 했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을 보더니 아내가 애들 방에 들어가서 하라고 사인을 보낸다.

 

한 동안을 하다가 마무리를 했는데 57번 스티커가 안 보인다. 분명히 숫자 순서대로 해서 있어야 하는데 사라졌다. 깔끔하게 완료된 느낌을 받고 싶었는데 오히려 찜찜하게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이쯤에서 그만둬야 할 시간이다. 이것은 포기가 아닌 마무리이다..라는 자기 세뇌를 하며 작업을 마쳐본다.

 

별거 아닌 작업이지만 얻은 것은 아빠로서가 아닌 나에게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구나..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한 어떤 작업이 아니라 그냥 오롯이 나 자신의 힐링과 여유를 위한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시간.. 자동차도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중간중간 브레이크를 밟아주는데 아이를 키우며 오히려 더 풀 액셀로만 달려왔구나.. 더 빠르게 가기 위해 가끔은 나에게 집중을 해야겠다..라는 것을 다시금 배우게 된다. 

 

다음에는 또 뭘 해봐야 하나.

728x90
반응형
LIST